스타렉스 | 연출 노도현 | 2019 | 13분 단편사무소 차종이 같아서 픽업할 상대를 잘못 태우는 설정이 재밌었어요.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노도현 감독 실제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어요. 단편영화 촬영에 보통 스타렉스 차량을 많이 이용하거든요. 어느 날 촬영이 끝나고 스타렉스에서 내려서 퇴근을 하던 중이었어요. 근데 스타렉스가 제 앞에 다시 와서 서길래 당연히 저희 차인 줄 알고 다가가서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고 "왜요?"라고 물어보는 순간 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라고요. '저 스타렉스에 내가 잘못 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영화 전반적인 느낌은 한밤중에 도시 곳곳에서 무용수들이 올누드로 춤을 추는 장면을 담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도시는 춤춘다>라는 사진집을 참고했어요. 단편사무소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던 차는 영화에서처럼 성매매 업소 차량이었던 건가요. 노도현 감독 네 맞아요. (웃음) 단편사무소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뻔했네요. (아찔) 근데 <스타렉스>의 영어 제목이 <Pick up>이더라고요. 영어 제목을 한글 제목과 다르게 정하게 된 배경과 한글 제목으로는 차종 이름을 그대로 붙인 이유도 궁금해요. 노도현 감독 우리나라에서 스타렉스라는 차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2000년대 초반에는 납치 차량으로 유명하기도 했었고 성매매 여성분들의 주요 이송 수단이기도 하면서 영화계에서도 정말 중요한 차량이거든요. '스타렉스'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자동차 이름 그대로 제목으로 붙였어요. 영어 제목이 다른 이유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스타렉스'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Pick up>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게 됐어요. 단편사무소 영화의 전반적 흐름이 누군가를 '픽업'해서 '자동차'라는 공간에 머물다가 목적지로 향하는 것처럼 보여요. 영화 <스타렉스>에서 '픽업'과 '자동차'는 어떤 의미인가요. 노도현 감독 추현과 희라, 두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피곤한 공간이 '자동차 안'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추현의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제작부 일을 하면서 현장관리도 해야 하고 배우들을 픽업도 해야 하는 괴로움과 매번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이동하는 희라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공통적으로 '차 안'은 피곤해지고 맥이 빠지는 공간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픽업'이라는 행위도 둘에게 피곤한 개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단편사무소 희라와 추현 사이에 '연기'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한때 연기를 했던 희라는 아직도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희라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지, 현재 가지고 있는 꿈은 또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노도현 감독 추현과 희라에 대한 인물 특징을 설정할 때, 둘이 근본적으로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업군이나 외모를 떠나서 꿈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추현에게 '꿈'은 '놓지 못하는 것', '현실과 다른 것'이라서 꿈을 생각하면 괴로워요. 반면, 희라는 '꿈' 자체를 잊어버렸을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현실을 살아내느라라 '꿈'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는거죠. 지금 희라에게 꿈이 있다면 '꿈이라는 걸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추현과 만났던 그 순간을 계기로요. 단편사무소 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추현과 연기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희라는 추현을 귀엽다는 듯이 대하는 것 같아요.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추현을 보는 희라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노도현 감독 제가 초반에 설정해뒀던 희라라는 인물은 '떠 있는 사람', 세상에 큰 관심이 없고 차를 잘못 타도 크게 상관없는 그런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희라 역을 맡으신 김해나 배우님은 다르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자신이 희라라면 "나랑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추현이라는 인물에게 인간적인 호감이 가고 '귀엽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 같다고 하셨고, 그 감정을 살려서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단편사무소 영상 연기와 연극 연기에 대한 차이를 알려주는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감독님은 어떤 연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나요. 노도현 감독 제가 다니는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르게 연극과와 영화과가 분리되어 있어요. 그래서 연극 연기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랐었는데 어쩌다 간 회식 자리에서 배우 두 분이 연극 연기와 영상 연기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죠. 이 문제가 배우분들에게는 자존심을 긁을 수도 있는 문제겠구나,라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희라와 추현의 대화 중에 진짜 갈등 거리가 아닌, 언제든지 풀릴 수 있는 갈등 소재를 찾고 있었는데 그날의 회식 경험이 떠올라 영화에 차용한 거였어요. 영상 연기와 연극 연기 중 굳이 더 어려운 것을 꼽자면 저는 영화하는 사람이니까 영상의 편을 들겠습니다. (웃음) 단편사무소 한 문장의 대사를 외치며 둘은 차에서 점점 멀어지며 도로 한복판으로 달려 나가요. 잠시나마 둘은 직업도 상관없고, 지금의 상황도 벗어던진 것처럼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끈끈한 연대가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이 둘의 자유로움은 '스타렉스'라는 공간에서 거리상 멀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요. 이 장면의 연출 의도는 무엇일까요. 노도현 감독 영화를 연출하며 의도했던 장면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차'라는 스트레스 공간이 유희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멀어진 둘을 옷차림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멀리서 촬영하는 거였어요. 두 사람이 멀어지는 곳이 무대처럼 보이기를 바라면서요. 이 두 사람은 스타렉스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곳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유로워지고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의도했던 장면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웃음) 단편사무소 도로 한복판에서 "성희야, 나 생각보다 괜찮아"라는 대사를 두 인물이 서로 주고받을 때 큰 울림이 있었어요. 왠지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아'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고 이것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 대사가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노도현 감독 사실 이날 밤의 에피소드가 둘의 인생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가로등이 켜진 밤길을 지날 때마다 문득 그날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 감정을 관통하면서 일상 속에서도 많이 쓰이는 대사가 무엇일까' 찾았던 것 같아요. 마침 이 영화를 준비하던 당시에 촬영 현장에 많이 나갔었는데 제가 가는 현장마다 "괜찮아"라는 말을 하루에 100번도 넘게 듣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괜찮아"라는 말이 말하는 톤에 따라서, 분위기에 따라서, 텀의 길이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스타렉스> 내용과 닮은 것 같아서 대사로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단편사무소 대사를 읊을 때, 추현보다 희라가 연기를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의도하신 건가요. 노도현 감독 김해나 배우님 (희라 역)에게는 메소드 연기에 대한 디렉팅을 많이 드렸어요. 극 중에서 희라는 읊고 있는 대사가 곧 자신이 되는 순간을 겪고 있으니까요. 아주 잠깐 연기를 했을 뿐인 희라가 메소드 연기를 하게 되고, 이를 바라보는 추현의 눈빛이 복잡미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의도치 않은 곳에서 내가 꿈꾸는 길의 정수를 본 느낌과 '저 사람이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니구나'라는 감정인 거죠. 단편사무소 추현 역을 맡은 배우분에게는 어떤 디렉팅을 주셨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노도현 감독 제가 설정했던 추현이란 인물은 항상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을 것 같아요. 교수님이 "이렇게 연기해야 해"라고 하면 지도 받은 대로만 연기하는, 의식적으로 표준에 가까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하시연 배우님 (추현 역)께는 묘하게 어색하게 연기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단편사무소 추현과 희라, 둘 다 이름이 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이 둘 이름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노도현 감독 희라라는 이름에는 즐거운 느낌을, 추현의 이름에는 쓸쓸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이 둘의 이름은 영화 마지막 즈음이 돼서야 밝혀져요. 이름 없이 유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많은 분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설정 같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에요. (웃음) 단편사무소 어느새 반대편 차량이 도착했어요. 이 둘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이름이 불리고 이제 둘은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데요. 차가 도착했을 때 희라와 추현, 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도현 감독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장면이 끝나는 순간을 영화에 그려내고 싶었어요. 상대방의 차가 도착한 순간 영화가 끝나고 갑자기 극장에 불이 켜진 것처럼 '아 이제 끝났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네'라고 생각하면서 마술이 끝나는 거죠. 차가 도착했을 때, 희라와 추현은 '함께 했던 이 순간이 일상을 바꿀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라는 것을 차갑고 쓸쓸하게 느끼는 순간이었을 거예요. 단편사무소 희라가 반대편 스타렉스에 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희라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오늘 밤 있던 일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노도현 감독 '문득 피식하게 되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정도일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순간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각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의 이후 삶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었어요. 김해나 배우님은 희라라면 이전의 삶과 똑같이 살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중한 순간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하시연 배우님은 '추현에겐 어떤 변화가 시작될 밤이었지 않았을까'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추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단편사무소 추현이 미소 짓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이 나요. 이 웃음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노도현 감독 저는 희라와 추현이 경험한 순간들이 지극히 개인적이길 바랐어요. 거시적인 측면에서 영화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마술적인 순간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성매매 여성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영화계 여성 스태프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가기보다는 마지막에 추현이 미소를 지으면서 이 순간을 후련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랐어요. 배우분께도 '재밌는 순간이었다'라는 느낌과 가깝게 연기 해달라고 디렉팅을 드렸고요. 단편사무소 스타렉스를 본 관객이 어떤 걸 느꼈으면 하나요. 노도현 감독 누구에게나 삶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하고 평범한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마술적인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순간이 날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 모두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특별한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단편사무소 영화 <스타렉스>는 숏트롱크루즈의 다섯 번째 섬, '어쩌다 마주친 타인의 섬'에서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때론 추현과 희라처럼 어쩌다 마주친 타인 앞에서 더 솔직해지기도 하는데요. 둘은 잠깐이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유대할 수 있었을까요. 노도현 감독 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생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새로 만난 이 사람이 내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언제든지 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인이기 때문에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은 '혹시 너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보다 유대가 더 쉬운 것도 '기대'라는 감정 때문이지 않나 생각해요.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게 더 아름다운 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단편사무소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에 추현과 희라가 떠오르네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단편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노도현 감독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 다른 종류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장편영화가 '이야기'에 대한 예술이라면, 단편영화는 '순간'에 대한 묘사 같아요. 단편영화는 순간이 순간으로 와닿을 때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에 대해 충실히 묘사를 해야 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사무소 마지막으로 숏트롱크루즈 탑승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노도현 감독 이동도 여행이고,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순간순간들도 모두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숏트롱크루즈의 의의가 이런 생각들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요. 숏트롱크루즈를 통해 각각의 섬에 도착할 때마다 그 의미에 맞는 단편영화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진짜로 이동하시지는 않지만) 봤던 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생각이나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단편사무소 숏트롱크루즈 다섯 번째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도현 감독 | 시놉시스 |현장 일이 서툰 제작부 추현은 스타렉스를 타고 배우를 픽업하러 가게 된다. 그러나 픽업장소에서 서로 착오하여 성매매 여성 희라가 추현의 스타렉스에 타고 만다. | 연출의도 |소통과 이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서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배제하고 상황과 상관없는 대화를 나누게 하며 그들의 소통과 이해를 관찰해보고 싶었다. | 스태프 및 출연진 |각본 및 연출 : 노도현 / 촬영 : 홍다예 / 사운드 : 이지수음악 : 임민주 / 제작 : 최병권 / 조연출 : 윤채은 / 미술 : 서예지윤희라 역 : 김해나 / 김추현 역 : 하시연 | 상영 및 수상경력 |24회 부산국제영화제 / 1회 심심풀이영화제 / 2회 전주단편영화제18회 피렌체한국영화제 / 37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 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16회 인천여성영화제 / 12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 21회 제주여성영화제1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 20회 전북독립영화제 / 19회 레지오영화제11회 광주여성영화제 / 8회 광진인권행동영화제 / 23회 교토국제학생영화제 심사위원상15회 프레쉬웨이브국제단편영화제 / 3회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 / 24회 브뤼셀단편영화제발리국제단편영화제 / 8회 목포국도1호선영화제 / 1회 성북청춘불패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