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수가족 | 연출 류연수 | 2021 | 25분 단편사무소 영화관에서 엄마는 아빠의 아픈 오른팔이 보이지 않도록 주머니에 손을 넣어주고, 기주는 준수에게 아빠가 아픈 진짜 이유를 숨기는 등 가족들은 아빠의 장애를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그럼에도 인파가 많은 영화관에 가기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류연수 감독 들키고 싶지는 않지만 극복하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기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현대인들은 저마다 극복하고 싶은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안에서는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라고 종용하잖아요. 미디어나 매체, 교육을 통해서. 그런 것에 익숙해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평균 가족인 거죠. 단편사무소 일상생활에서 장애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영화관 외에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영화관'으로 무대를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영화관이라는 장소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공감을 일으키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영화관이 시스템이나 청결 면에서도 잘 되어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인식은 많이 지체되어 있다는 걸 사람들의 정서 속에서 느꼈거든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이질적이더라고요. 겉으로 보기에 번지르르한 영화관에서 장애의 불편함을 좀 더 부각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관을 배경으로 설정하게 됐어요. 단편사무소 경험에서 비롯된 설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제 일상 속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장소가 영화관이었던 것 같아요. 단편사무소 어떻게 보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인데 유쾌하고 코믹하게 그려낸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와 톤으로 연출한 의도가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사실은 제가 이야기를 웃프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 가족들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니 지나치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관에 그냥 휠체어를 타고 가면 쉽고 편하겠지만, 라이벌인 명철 아저씨를 이기고 싶은 귀여운 욕망을 밝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단편사무소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장면들이 많았어요. 갑자기 궁금한데,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재밌는 장면에선 감독님도 깔깔 웃으면서 쓰시나요. 류연수 감독 좀 주책맞지만 저는 글을 쓰다가 슬픈 장면 있으면 울고, 웃긴 장면 있으면 웃고 그러거든요. 지금은 멜로 영화를 쓰고 있어서 우는 때가 더 많은데, <반신불수가족> 같은 경우에는 특히 에스컬레이터 장면에선 제가 쓰면서도 낄낄댔던 기억이 나네요. 단편사무소 관객의 시선 흐름과 함께 흘러가면서 쓰시는군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 같아요. 특히 언니가 표를 구매하려고 할 때 끼어든 ‘안경남’이 신 스틸러였는데요. 류연수 감독 안경남 캐릭터를 연기하신 분은 사실 '엄하늘 감독님'이라고 단편영화를 많이 찍으신(특히 멜로 영화를 많이 찍으심) 한예종 영상원 선배예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영화에 존재하는 빌런을 그분으로 해야겠다고 염두에 뒀었어요. (웃음) 사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안경남 캐릭터가 시네필이나 오타쿠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거 아니냐, 캐릭터가 너무 하이퍼리얼리즘 아니냐면서 지독해하시더라고요. 안경남 캐릭터가 그렇게 구현된 것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게 아니라 선배의 귀여운 포인트를 극대화하려던 것이었어요. 단편사무소 그 선배는 실제로 안경남 같은 캐릭터는 아니신 거죠. (웃음) 류연수 감독 선배의 실제 캐릭터를 착안해서 시나리오에 녹인 것은 맞는데 과장된 부분이 있죠. 실제로 새치기해서 굿즈를 가져가시는 분은 아니에요. (웃음) 단지 '영화에 진심이고 굿즈를 정말 사랑하신다'라는 부분은 실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편사무소 기주가 아빠 허리춤을 잡고 걷는 걸 도와주는 장면이 중간중간 나와요. 아빠는 기주가 남자 화장실에 같이 가는 것도, 소변통을 체크하는 것에도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허리춤을 잡는 것만큼은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류연수 감독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허리춤을 잡히기 싫은 것은 독립적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딸이 남자 화장실에 같이 가거나 소변통을 체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걸을 수 있는데 왜 내 허리춤을 잡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버지는 굉장히 자존심이 센 캐릭터라고 볼 수 있어요. 단편사무소 걷는 걸 도와드릴 때 허리춤을 잡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인가요. 류연수 감독 네. 요양보호사님들이나 가족들이 가족 구성원을 부축할 때나 넘어질 것 같을 때 보통 허리춤을 잡아요. 허리춤 말고는 딱히 잡을 데가 없는 것 같아요. 멱살을 잡을 수 없으니. (웃음) 팔을 잡으면 큰일 나기도 하고요. 단편사무소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은 영화관 좌석에 앉기까지 했지만 어렵게 앉은 영화관에서도 가족들은 계속 삐거덕거려요. 소란 끝에 아빠는 혼자 걸어나가다 넘어지고, 가족들은 결국 영화도 보지도 못하고 나오게 되는데요. 가족들이 성공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해피 엔딩이 아닌, 결국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된 결말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애초에 이 가족의 목표는 영화 관람이 아니라, 아빠가 영화관에 가는 게 소원이니 '영화관에 한 번 가보는 것'이었어요. 사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아버지가 스크린 앞에서 지팡이 없이 우람하게 걸어나가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가족들에겐 영화를 보고, 안 보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영화를 봤는지에 대한 설정은 생략되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편사무소 '영화관에 갔으니,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이 행복한 결말이다'라고 생각한 것 또한 어떤 편견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아빠에게 '혼자 걷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류연수 감독 '승리', '내가 이명철을 이겼다'일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어떤 대의나 자기 자신의 자발적인 독립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성숙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가족은 그만큼 성숙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빠가 혼자 걷는 것은 오롯이 이명철을 이겨먹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그래도 결국 이겨먹고 싶은 타인이 존재했기 때문에 아빠가 혼자 걸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좋은 승부욕이라고 볼 수 있죠. 단편사무소 영화 속에선 아빠만 반신불수인 설정인데, 제목은 가족 전체를 칭하는 것처럼 보여요. 제목을 짓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이 가족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가족이라 생각해요. 단순히 신체적으로 반신이 마비된 것만이 반신불수가 아니라 (조금 과격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어딘가 치우쳐진 생각을 하는 것도 반쪽이 불수된 것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마비된 몸보다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가 더 위험한 것 같아요. 한편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향적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요. 다들 밸런스가 맞고 중립적이면 삶에서 드라마는 생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편향된 인물들로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반신불수가 된 아빠의 이야기가 아니고 반신불수 아빠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신불수가족'이 된 거예요. 단편사무소 처음 <반신불수가족>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왠지 강렬하고 슬픈 이야기일 것 같다는 예감에 재생버튼을 누르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류연수 감독 사실 <반신불수가족>이 좋은 제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영화의 톤앤매너에 비해서 제목만 봤을 때는 너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는 사람에 따라 불친절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을 더 이해할 수 있게끔 의도했었어요. 이 의도를 많은 분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관객분들이 제 영화를 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단편사무소 영화에 장애인 복지카드나 화장실 사용 등 장애인들이 일상생활 중 겪을 수 있는 불편 요소들을 담았어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이러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류연수 감독 제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겠지만, 이 영화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영화예요. 복지카드나 장애인 화장실 같은 경우에도 실제로 제가 답답하고 화가 났던 일에서 비롯됐고요. 너무 선전영화처럼 보이지 않도록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서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제가 아버지를 업고 영화관에 간 적이 있어요.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업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더라고요. 제가 아버지를 업고 어머니랑 언니가 아버지 양다리를 하나씩 들고 가는데 무거워서 힘든 게 아니라 웃겨서 힘들더라고요. 모양새가 너무 웃기니까. (웃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모시고 영화관에 들어가서 본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었어요. 그 영화를 보면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둔 형제의 이야기가 간간이 껴있거든요. 아버지를 모시고 그 영화를 보니까 영화적 체험이 훨씬 풍부해진 경험이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단편사무소 혹시 영화 속에 넣고 싶었지만 못 넣었던 요소가 있을까요. 류연수 감독 영화를 통해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장애인 가족을 둔 비장애인으로서 울분이 쌓이는 부분이 있거든요. 예전에 비해 처우나 시스템은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이나 태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단편사무소 영화 <반신불수가족>은 숏트롱크루즈의 네 번째 섬, '함께 살아갈 세상의 섬'에서 함께 하게 돼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지금 우리 사회의 부족한 모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또 류연수 감독님이 꿈꾸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류연수 감독 중용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저도 성미가 급해서 실수할 때가 많지만, 한국이란 곳이 워낙 빠르고 급하게 바뀌다 보니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치 않게 느껴져요. 저는 배려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시간을 내어줄 수 있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얼마나 주변을 잘 살피는가', 단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우리 사회가 편향되거나 치우치지 않고 타인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관대한 사회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단편사무소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네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단편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류연수 감독 단편영화는 '시'라고 생각해요. 장편영화가 소설이라면 단편영화는 시가 아닐까요. 저도 시 같은 단편영화를 쓰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단편사무소 마지막으로 숏트롱크루즈 탑승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류연수 감독 호화롭진 않지만 제가 성심성의껏 가꾼 관광지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루즈 컨셉에 충실한 편) 단편사무소 숏트롱크루즈 네 번째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연수 감독 | 시놉시스 |기주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에 나선다. | 연출의도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가족은 결국 하나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 스태프 및 출연진 |각본 및 연출 : 류연수 / 촬영 : 김힘찬 / 편집 : 백결녹음 : 김다빈 / 사운드 : 김혜미 / 음악 : Lumos Music제작 : 김인혜 / 조연출 : 신선혜 / 조명 : 허기연기주 역 : 황숙영 / 진주 역 : 손예원 / 순대 역 : 박재한 / 미현 역 : 양말복 | 상영 및 수상경력 |13회 익산장애인영화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4회 전북가족영화제 폐막작6회 충무로영화제-감독주간14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8회 가톨릭영화제 장려상22회 가치봄영화제22회 제주국제장애인인권영화제24회 도시영화제 우수상12회 광주여성영화제